2,000년 전 질문으로 AI 시대를 읽다: 김유열 EBS 사장이 말하는 고전, 문해력 그리고 AI

1999년, 세계의 방송사들이 밀레니엄을 앞두고 거대한 미래 특집을 준비할 때 당시 PD였던 그는 오히려 2,000년 전의 질문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프로그램이 도올 김용옥 선생의 〈노자와 21세기〉였다.
지금 그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고 떠오른 생각을 소셜미디어에 남긴다. 대학 학점과 영어 성적 대신 문해력을 기준으로 신입사원을 뽑고, AI를 활용해 오래된 고전을 다시 콘텐츠로 만들고 있다.
서로 다른 선택으로 보였지만, 그 바탕에는 하나의 생각이 흐르고 있었다.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그 질문이 어떻게 콘텐츠와 사람, 조직의 선택으로 이어졌는지 들어보았다.

시간을 넘어 새롭게 읽히는 것
Q. 시대의 변화 속에서, 콘텐츠를 기획하는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기획자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함께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트렌드에 관심을 갖습니다. 하지만 트렌드를 따라가려면 자본과 속도가 필요합니다. 뒤따라가는 순간 이미 늦을 수도 있죠.
그래서 저는 EBS에서 오랫동안 콘텐츠를 기획하면서 다른 질문을 해왔습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이 계속 읽고, 보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오디세이아』는 2,00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영화와 연극으로 다시 만들어집니다. 노자 역시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이지만 여전히 새로운 언어로 읽힙니다.
그래서 1999년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2,000년 동안 읽힌 글이라면, 2,000년 뒤에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의미를 가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입니다.
밀레니엄을 앞두고 모두가 미래를 바라볼 때 저는 오래된 고전으로 새로운 시대를 설명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기획한 것이 〈노자와 21세기〉였습니다.
EBS는 유행을 좇기보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그 밑에 흐르는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를 콘텐츠로 만들어왔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을 본다는 것은 과거에 머무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변화 속에서 무엇을 남길 것인지 판단하는 일에 가깝다고 봅니다.
Q. 〈AI 고전, 역사를 바꾼 100책〉 시리즈를 시작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꾸준히 다시 찾는 콘텐츠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나요?
좋은 콘텐츠는 시간이 지나며 낡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현실을 만나면서 자산 가치가 축적됩니다. AI로 콘텐츠를 더 빠르고 많이 만들 수 있는 시대일수록, 무엇이 다시 발견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일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봅니다.
어떤 작품이 고전으로 남는 것은 단지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시대와 독자가 달라질 때마다 새로운 의미로 해석되고, 그것을 읽는 사람의 관점까지 다시 구성하기 때문입니다.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의 사건과 유행을 다룬 콘텐츠는 시간이 지나면 의미를 잃기 쉽습니다. 반면 인간이 오랫동안 고민해 온 질문을 담은 콘텐츠는 달라진 시대 속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얻습니다.
최근에는 12년 전 제작된 〈하나뿐인 지구〉의 ‘히말라야의 대재앙, 빙하 쓰나미’ 편을 많은 사람이 다시 찾았습니다. 제작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현실이 과거의 콘텐츠를 다시 불러낸 것입니다.

폐허가 남긴 상상력
Q. 파괴가 오히려 혁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신 적이 있나요?
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품고 있는 앙코르와트와 미얀마의 쉐다곤 파고다를 각각 다큐멘터리로 담은 적이 있습니다.
쉐다곤 파고다는 압도적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계속해서 금박을 덧붙여 온 거대한 황금빛 공간이었죠. 이미 완결된 아름다움 앞에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고, 무언가를 더 상상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앙코르와트는 달랐습니다. 많은 부분이 사라지고 무너진 폐허에 가까웠습니다. 그곳에 서니 오히려 과거에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이 거대한 공간을 다시 재구성해 볼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해 앙코르와트의 과거 모습을 복원하는 콘텐츠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제작한 앙코르와트 복원 다큐멘터리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성과의 출발점은 완벽하게 보존된 유적이 아니라, 사라진 것을 새롭게 해석하게 만든 폐허의 공백이었습니다.
인간의 판단을 만드는 언어
Q. AI가 질문까지 만들어내는 시대, 인간에게 더 중요해지는 역량은 무엇일까요?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답을 얻는 능력보다 그 답을 받아들일지 판단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을 단순히 질문을 잘 던지는 창의력의 문제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AI는 이미 인간보다 훨씬 빠르고 정교하게 질문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자신의 기준이 없으면 AI와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답을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그대로 따라가기 쉽습니다. 반대로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고 있다면 같은 답을 받아도 다르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가치 있는 일인가. 어떤 선택을 하고 그 결과를 책임질 것인가.
이런 철학적 질문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던지는 능력은 질문을 만드는 기술과는 다른 차원에 있다고 봅니다.
Q. 최근 인터뷰와 글에서 독서와 문해력을 강조하셨습니다. 특히 지금, 그 가치가 더욱 중요해졌다고 보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람은 자신이 만난 언어의 범위 안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책을 펼쳐 ‘니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과거에 읽었던 니체의 문장과 생각이 머릿속에서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니체라는 단어를 만나지 않으면 니체에 관한 생각도 시작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익숙한 사람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다 보면 이전에 사용하지 않았던 어휘와 관점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책은 평소의 대화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언어를 만나게 합니다. 단어 하나가 생각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문해력은 단순히 글자를 읽고 내용을 이해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문자를 읽을 수 있어도 그 안의 맥락과 의미를 읽지 못할 수 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문자를 다루는 능력이지만, 그 내면에서 작동하는 것은 자신과 세계를 해석하는 능력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EBS의 채용에도 반영했습니다. 대학 학점이나 공인 영어 성적보다 독서·문해력과 쓰기 능력을 중심으로 신입사원을 살펴봤습니다. 무엇을 얼마나 외웠는가보다 새로운 언어를 만나 생각하고, 자신의 판단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지를 보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기술, 오래된 질문
Q. EBS는 인간 본연의 질문을 다루면서도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간에 관한 철학적 질문을 담은 콘텐츠를 만드는 일과 AI를 주도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서로 반대편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AI 흐름을 밖에서 바라보며 평가하기만 해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AI를 자신의 삶과 직접 충돌시켜야 합니다. 실제로 사용하고, 만들고, 시행착오를 겪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도 있고, 지금까지 갖고 있던 이야기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다만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직접 판단할지 결정하는 주도권까지 기술에 넘겨서는 안 됩니다. AI를 경험하면서도 자신의 기준과 주인의식을 지켜야 합니다.
AI를 통해 고전과 지식을 새로운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모든 사람이 『오디세이아』나 『사피엔스』를 직접 읽기는 어렵습니다. EBS가 완벽한 선생님은 아닐지라도 평소 만나기 어려운 책과 인물, 중요한 생각과 접촉하게 하고 익숙한 사고에 작은 충격을 줄 수는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로 인간의 오래된 질문을 다시 세상에 내놓는 것. 그것이 EBS와 제가 지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유열 EBS 사장과의 이번 대화 끝에 남은 것은 결국 인간의 오래된 질문이었다.
변하지 않는 가치란 과거에 머무는 답이 아니라, 변화 속에서 다음 선택의 방향을 정하는 기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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